1.
성민이를 만났다.
작년에 휴가나왔다고 과방에서 잠깐 본 이후로 처음이다.
대학다니는 4년동안 과에서 서울에 사는 사람도 보기 힘들었지만, 우리 동네에 사는 사람은 더더욱 찾기 힘들었는데 신기하게도 같은 구민출신(?)이라는 걸 알게된 뒤 유난히 성민이에게 잘해주고 싶었다.
지연타파를 외치지만 같은 지역사람에게 마음이 쓰이는 건 한국사람의 어쩔 수 없는 본능인가보다.
학기 중에 특별하게 잘 해준 건 없지만서도 그래도 방학 때나마 만나서 밥 한끼라도 사주려 노력했는데,
어쩌다보니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던 식사가 2012년.
발산까지 가서 파스타를 사주고 커피는 제가 사겠다며 사주던 성민이의 커피(?)를 마시며 카페베네에서 과얘기를 포함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던 때.
3년 후, 동네에서 다시 만나 밥 한끼를 같이 먹었다.
2012년에도 이맘때 ..종강즈음.. 만났었고.
오늘도 3년 전처럼 식사한 뒤 성민이가 사주는 커피를 마셨다.
그냥 이런 사소한 교집합들이 과거를 또 회상하게 한다.
괜히 그 때 생각이 나서 만나기 전부터 기분이 좋았다.
그냥 내가 제일 재밌었던 2012년 1학기 생각도 나고 ..
추억회상이 가지를 뻗쳐 집부하면서 엠티갔던 거.. 과생활했던거.. 수업들었던 거.. 그냥 하나하나 다 생각이 난다.
역시 사람 하나하나가 내 소중한 추억이다.
후배 한 명 만난 것 뿐인데 별별 추억이 다 떠오르네.
12학번 애들이 새내기였던 나는 이제 갓 2학년이 됐던 그 때.
크게 나이가 먹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애틋하다.
그 새내기가 군대갔다온 복학생이고, 갓 2학년이 된 나는 졸업을 하고 이제 대학교와 상관없는 사람이 됐다.
시간 빠른 거 참 싫은데 시간 참 빠르다.
2.
'알바 했던 곳'이 아닌 '알바 면접을 봤던 곳' 사장님과 안부인사를 가끔 주고 받은지도 벌써 4개월 째.
참 나도 '알바 면접을 봤던 곳' 사장님과 이렇게 연락을 하고 지내는 것도 처음이고 아직도 신기하다.
면접 이후 처음 정말 '뜬금없이' 사장님께 연락이 왔을 때 늘 봐왔던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랬듯 필요해서 연락하셨구나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지만,엄마도 '너 세상이 그렇게 따뜻하고 예쁜 줄만 아니~'라고 했을 때 맞는 말이라 생각했지만,
그런 예상과는 달리 그저 인상이 좋아서 같이 일하고 싶어서 다시 연락했다는, 사정상 알바를 못할 것같다고 말씀드리니 같이 일하진 않더라도 자주 놀러오시라던 사장님.
그 이후로도 가끔가다 좋은 명언도 보내주시며 안부를 전해주셨다.
오늘 또 오랜만에 연락이 왔길래 '알바가 필요하신가?' 잠시나마 생각했는데,
가게가 이사했다며 언제 시간되면 놀러오라고 말씀해주시려 친히 연락을 주신 거였다.
정말 그냥 이런 분이 또 있을까 싶을정도로 신기하고 고맙다.
아무 목적없이 그저 나를 좋게 봐주셔서 연락해주시는 분도 있구나 하고..
그리고 오늘 카톡을 주고 받다가 마지막에 해주신 말씀.
딸뻘인 나에게 딸같아서 해주신 말씀이겠지만 그냥 저 말 하나가 감사하고 나를 또 생각하게 한다.
'너의 꿈 잘 키워서 꼭 보여다오'
이렇게 스쳐지나가는 인연일지라도 꿈을 이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기쁨이 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런데 꿈을 '이뤄'가는 게 아니라 자꾸 꿈을 '잃어'가는 사람이 되는 것같아 슬프다.
3.
프로듀사가 마지막 방송을 했다.
내 꿈인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PD에 대해 다룬 드라마.
예전같으면 '우와 PD드라마래 ㅜㅜ'라며 설레발치며 PD이야기에 집중해서 봤겠지만,
요즘에 하도 이 일에 생각이 많아지고 진절머리..라고까지 표현해야하는 게 맞는진 모르겠지만..
여튼 그래서 PD에 대한 환상은 딱히 없이 이 드라마를 봤다.
뭐 방송이야 그동안 이곳저곳 들은 것도, 가끔가다 짧지만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본 것도 많기때문에 내용들이 그리 낯설진않았다.
그런데 낯설지 않아서 친근했기보단 더 반감을 가지고 봤던 것같다.
내가 직간접적으로 경험했던 것들 중에 좋은 것들만 뽑아서 방송에 대한 환상들만 심어주는 드라마 같아서 말이다.
드라마가 다 뭐 그렇지!만....
그렇게.. 재밌게 보면서도 반감을 가지며 보았던 드라마인데
오늘 마지막화는 자꾸 꿈을 놓을까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왜 내가 PD가 되고싶었는지 다시금 생각나게했다.
신입 PD를 혼내며 했던 극중 선배 PD의 말.
'잘들어 너는 진짜 PD로서 하면 안될 짓을 했어 말하자면 최악이야 그건. 니가 그렇게 한 덕분에 해결은 됐더라.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물론 입주민을 위한 편의 시설이니까 항의를 하고 좋다고. 그런데 너 PD란 얘긴 왜했어? 너 어디서 그런 못된 것만 배웠니. 너한텐 아직 직권도 없는데 너는 있지도 않은 직권 남용을 한거야. 카메라라도 들고가려고 그런 소리했어? 카메라 들고가서 셀카촬영이라도 하게?'
그렇다. 내가 PD가 되고싶었던 이유. 바로 '직권남용'을 하고 싶어서였지.
내가 PD라서. 그런 권력을 이용해서. 힘이없어서 도움이 필요한데도 도움을 못 받는 사람들. 부당하게 억울한 대우를 받았는데도 힘이 없어서 아무 말도 못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위해 '내가 PD인데~'라며 집권남용하며 그들의 입이 돼주고 싶었다.
극중에서 선배는 후배PD가 PD라는 힘을 이용해서 사사로운 이익을 챙길까봐 걱정을 해서 하는 말이었지만, 사사로운 이익을 챙길만한 힘이 있는 사람이 PD라면 그걸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 힘을 이용해서 공공의 이익을 만들 수 있는 사람도 PD다.
누군가의 힘이 돼줄 수도 있는 그런.. 그런 사람이 되고싶었지. 그래서 내가 PD가 되고싶었지.
차라리 모든 힘이 다 빠져서 내 꿈을 이룰 힘도 없어서 맘편히 꿈을 포기하고싶은데,
자꾸 힘이 빠질만 하면 내가 왜 PD가 되고싶었는지 되새겨주는 일들이 일어나서 그게 더욱 힘들다. 희망고문같다.
환상이 현실이 되고 현실을 겪으면 회의감이 되고 그 회의감을 이겨내면 보람이 되는건가.
지금 회의감의 단계가 너무 커서 과연 보람이 순간이 올런지 잘 모르겠만.
드라마는 허구이지만 프로듀사 속 그 허구를 보면서 왠지모를 보람찬 에피소드가 이상하게 많이 와닿았다.
그런 순간을 많이 꿈꿔왔는데 직접 눈으로 보여주니 그런가.. 비록 허구이긴하지만..
어릴 때 드라마를 보며 '와! 저거 멋있다 나도 하고싶다!'라고 생각한 적도 많다.
드라마 속 군인이면 군인 파티셰면 파티셰 경찰이면 경찰..
지금 생각해보면 '어휴.. 그 드라마 속 허상들만 보고.. 어릴 때지..'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24살이나 먹고 다시 그 어릴 적으로 돌아간 기분이다.
드라마 하나로 '와! 저거 멋있다 나도 하고싶다!'라는 생각이 든다.
프로듀사에 나왔던 방송국, 편집기기, 카메라들을 보면서 너무 짜증나는데 좋다. 그런데 짜증난다.
아 모르겠다. 좋고 짜증난다. 좋고 짜증난 이 꿈을 난 이룰까 잃을까 모르겠다 나도.
4.
가끔..은 아니고 자주.. 뭐 하루에 한 번이상은 블로그 유입로그를 보곤한다.
무슨 검색어로 내 블로그에 들어오게 됐는지 살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오늘 눈에 띈 검색어는 '끝내더라도 얼굴 보고 얘기하자'
딱 작년 이맘때가 생각나는 유입로그.
그래서 그 때 쓴 구구절절한 이별일기를 다시 읽어봤다.
읽고 나서 참 그 때 일기 써놓길 잘했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 때 엄청 많이 힘들어서 시간이 지나도 이 감정은 잊혀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도 가끔은 작년 이맘때 생각이 나서 '아직도 난 그 감정을 잊진않았구나'라 생각했는데.
일기를 읽어보니 단순 힘들다라는 감정으로 표현할 수 없는 더한 감정들을 그땐 느끼고 있었다.
잊지않을 것만 같던 세세한 감정을 일년이라는 길어보이지만 짧은 시간에 잊어버린 것이다.
일기를 한줄한줄 읽어보니 그 때의 세세한 감정이 다시 떠올랐다.
글로나마 기록해놓지 않았더라면 큼직한 감정이외에 일기에 하나하나 담겨있는 세세한 감정들을 까먹을 뻔 했다.
그렇게나 힘든 시기를 보내며 느꼈던 소중한 경험과 이제는 추억이라 말할 수 있는 감정들을 하마터면 그냥 날려버릴 뻔했다.
지금 보니 완전 애잔보스다. 에고 내가 쓴 건데도 나를 만나서 토닥토닥해주고싶다.
이제 연락도 하지말고 지나다가 마주쳐도 아는 체 하지말라는 말을 하고 일어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말을 내던지고 일어서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제 내가 이 말을 내뱉고 나면 이렇게라도 마주앉아 있는 순간은 마지막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쉽게 그 말을 못꺼냈다.
정말 호구같게도 그냥 그 순간조차도 이렇게 마주 앉아있는게 좋았다.
혼자 크게 마음을 먹고 이제 나한테 연락도 하지말고 마주쳐도 아는체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날 보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그래'라고 답했다.
그리고 그렇게 카페를 박차고 나오는데, 난 분명 하고자했던 말을 다 했는데 속이 후련하지가 않았다.
그냥 지금 이 마지막 순간에도 이 사람은 왜 얘는 내 소중한 시간을 잡아먹고있나라고 생각하는 것만 같아서 속상했다.
화가나고 속상하고 답답한데도, 카페를 박차고 나오는 순간까지도 너무 좋았고 보고싶었다.
시간을 돌려서 내가 그동안 그림그리는 걸 좀 더 이해해줬더라면, 내가 오늘 약속을 미루지 않았더라면, 내가 만날 때마다 더 예쁘게꾸미고 나갔더라면.. 그랬더라면 나보고 헤어지자는 말을 안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하고싶은 말도 다하고, 화낼 것도 다냈는데 후회가 된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내가 널 정말 좋아했었다고 이 말 한마디 해줄 걸 후회가 된다.
짧게 만나서 정리할 추억도, 정리할 물건도 없더라..
그냥 남은 거라곤 내가 널 엄청 좋아했던 마음 그게 다야.
차라리 오래 만났으면 정 많이 들었겠다. 힘들겠다 위로라도 실컷 받을텐데.
그냥 내가 계속 이런 생각하면서도 나는 너한테 아무것도 아니었다는게, 넌 지금도 되게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낼거란 생각에 마음이 아프다.
그동안 제대로 오래 본 적도 없어서, 아쉬워서 그런지 더 보고싶다.
인턴끝나면 하고 싶은 게 그냥 그거 하나였는데, 벤치에 몇시간이고 앉아서 계속 얘기하는 거.,.
하여튼 그냥 해주고 싶은 말은 그거였어. 내가 널 엄청 좋아했고, 살면서 누군가가 널 그렇게 좋아해줬던 걸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대학 생활 마지막돼서야 진짜 좋아한다는 게 뭔지 알려줘서 고마워. 널 만나 좋아할 수 있어서 고마웠어.
지금보면 확실히 그 사람보다 그냥 그 때의 내가 그리워서 그 사람을 더 그리워 했던 것같다.
그 때의 나 그 때의 모든 것이 많이 그립다.
오늘 여름날 비오는 것 하나만으로 작년이 많이 생각났던 것처럼.
기분이 정말 좋아서 작년에 그렇게나 입었던 옷을 입고 그렇게나 들었던 노래를 들으며 기분좋게 걸어서 집에 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