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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응답하라 2015

난 분명 연습했다.

이제야 글 쓸 여력이 생긴다.

그렇게 걱정하면서도 기대했던 오디션이 다 끝났다.

끝나면 어떻게 되든 후련할 줄 알았는데 망했다는 생각 뿐이다.

계속 내가 정말 바보같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걱정하던 PT를 다 끝내자마자 뭔가 느낌이 이상했다.

역시나 질문들을 듣자마자 그냥 생각들이 머릿속 밖에서 휭휭 도는 느낌 뿐이었다.

대답을 하는데도 그냥 나도 이상한 소리들을 해대는 것 같았고 듣는 사람도 썩 만족스럽지 않은 표정이었다.

고작 몇 사람 앞에서 그러는 것도 창피한데 그 많은 사람앞에서 내 바보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으려니 여간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그렇게 가고싶다면서... 생각해보면 내 기획에 대한 자신만 있으면 쉬운 질문이었을텐데 질문을 듣는 순간 자신감이 뚝뚝 떨어졌다.

그 몇 주동안 그렇게나 준비했던게, 아니, 24년 간 살아온 내 자신을 소개하는 게 고작 그 10분 안에 그렇게 망가지다니

그냥 허무하고 속상하고 바보같았다.

그래서 오며가며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던 직원 분이 안타까웠는지 내 매력을 얘기해보라고 했다.

정말 이런 내 진짜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냥 머릿 속에는 내가 바보같다는 생각뿐이고 만회해야한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아 거기서 이상한 춤을 췄다.

그리고 춤이 끝나고 마지막 발언 때도 웬 이상한 말만 해대고 나왔다.

항상 잘했든 못했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내 모습을 보여주고오면 결과는 상관없었는데

결과는 둘째치고 그냥 그렇게 24년동안 열심히 살아온 내 모습에 대한 것 하나 못 보여주고 바보같이만 돌아온 게 너무 슬프다.

내가 그렇게나 부족한 사람인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생각해보면 들었던 질문들 다 내가 준비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막상 실전에 가니 너무 쫄아있었고 내 대답들도 사람들을 설득시키지 못했다.

PT 속의 그 말 처럼 항상 '부족함이 미덕이다'라는 말로 나를 위로해왔는데

얼마나 또 채워야할지, 이제 그만 좀 배우고 싶다.

어딘가에 좀 소속돼서 나도 좀 일을 하면서 배우고 싶고 부모님께 손도 안벌리고 내 당장 앞날에 대한 걱정없이 현재를 즐기면서 좀 배우고싶다.

기회가 분명히 주어졌음에도 잡지 못한 내 자신이 너무나 바보같고

또 언제올지도 모를 기회를 기다리는 것도 내 자신을 몇 번씩이나 스스로 위로하는 것도 이제 많이 지친다.

그런 성격이 아닌데 그런 성격처럼 보여지려고자 하는 내 자신도...

분명 전날 밤 스스로 '굳이 내 자신이 아닌 모습을 보여주려하지 말자' 저렇게 메모장에 까지 써놨는데

그렇게 쫄아서 이상한 얘기들, 모습들만 말하고 보여주고 왔는지 모르겠다.

망치고 온 것도 속상하지만 이제 내가 그 결과를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게 제일 슬프고 답답하다.

그동안 그렇게 준비했던 몇 주는 내가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도 받았지만 기대도 했던 날들인데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게 많이 답답하다.

오디션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그냥 하고싶은 말을 하라고 했을 때로 돌아가면 무슨 말을 할까 혼잣말로 얘기해봤다.

'보신 것처럼 나는 되게 조용하고 말을 잘 못한다고, 그래서 나같은 사람에게 늘 마음이 쓰인다고.

그래서 이 강연은 무얼 들려주느냐보다 하고자 하는 말이 있어도 말할 곳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무대라고.'

아 이 말을 그냥 혼자 하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모르겠다. 그냥 정말 복합적이다.


어찌됐든 끝났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으니 푹 쉬고 그동안 못했던거 즐기자 생각했는데

어떤 뭘 해도 즐겁지가 않다.

사람을 만나도, 티비를 봐도, 노래를 들어도 그냥 사는 게 너무 재미가 없다.

뭔가를 하면 언젠가 도움이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들로 이것저것 해왔던 대학시절이 마냥 그립기만하다.

막상 할 일이 많을 땐 그저 책 많이 읽고 하루종일 앉아서 영어공부도 하고 배우고싶은 것들이 참 많았는데

이렇게 여유가 생기니 공부를 하는 일도 심지어 노는 것도 다 재미가 없다.

내가 몇 년 전만 해도 왜 그리 재밌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뭘 해야 재밌을까.

찍고싶었던 다큐멘터리를 찍으면 재밌을까. 영어공부를 하면 재밌을까. 뭐가 재밌을까.

그냥 뭘 하는 것도 뭘 안하는 것도 그냥 다 그저 그렇다.

스스로 괜찮다고 하는 것도 이제 조금 지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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