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엔 비가 내리고 은은하게 비향기가 난다.
비올 때의 고요함과 적막함이 좋다.
..좋았다.
비가 싫어졌다는 건 아니다.
집에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비소리를 듣고 비냄새를 맡는 것은 늘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요즘들어 힘들건 어떻건간에 제일 슬픈 건.
이런 사소한 행복 하나하나를 놓친다는 거다.
화창한 햇살, 은은하게 불어오는 봄바람, 웃으면서 지나가는 꼬마
이렇게 소소하게 느낄 수 있는 행복들을 느낄 수 없다.
엄밀히 말하면 그런 행복을 느끼려는 오감들을 내 스스로 꾸역꾸역 차단하고 있다.
가끔가다 부는 시원한 바람도 그렇다.
아니 내가 느끼는 요즘의 시원한 바람을 제대로 표현하자면 추운 바람이라 표현하는 것이 맞겠다.
시원하다 춥다의 개념은 상대적이다.
몇도부터 시원한건지 몇도부터 추운건지.
음.. 내가 좋으면 시원한 거고 내가 싫으면 추운 게 아닐까.
요즘들어 싫은 게 하도 많아지다 보니 시원한 바람도 싫어져버려서 추운 바람이 됐다.
몇주전 남들이 '시원한 바람'이라 부르는, 내가 부르길 '추운 바람'이라 부르는 바람이 불길래 한겨울에나 입을 법한 야상을 갖고 나갔다.
엄마는 무슨 이 날씨에 야상이냐며 이해를 못하는 눈치였다.
그냥 그렇다 조금이라도 찬 기운이 내 살결을 스치는 게 싫다.
힘든 날들을 왜 더운 날이 아니라 추운 날이라 하는지 알겠다.
힘드디 힘들땐 찬바람 하나 스치는게 너무나도 싫다.
봄이 다 가고 여름이 다가오는데도 꾸역꾸역 긴팔에.. 멀리 나갈때는 두꺼운 겉옷 하나씩은 꼭 챙겨간다.
추운 바람이 닿을 까봐.
예전에야 젊은 게 좋다고 찬바람 부는데도 반팔입고 다니더니
이제는 추운 바람 조금이라도 스치는 게 싫다.
머리카락도 거추장스러워 잘라버리고 싶은데 그러면 찬바람이 조금이라도 더 들어올까봐 못자르고있다.
아 머리카락 자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