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갓 4살이 된 사촌동생 인하가 우리집에 놀러왔다.
이모네 가족이 뮤지컬 공연을 보러갔고, 어린 동생은 음.. 우리집에 잠시 맡겨졌다고 하는 게 더 났겠다.
어제 저녁 엄마가 내일 인하가 우리집에 올 거라고 괜찮냐고 물었다.
예전같으면 그냥 통보했을 말이지만, 요새들어 엄마가 내 눈치를 보는 듯했다.
이럴 건데 괜찮니, 저럴 건데 괜찮니.
졸업을 하고 취업준비를 하고 있으니 엄마는 이제 이래라 저라래하기보다 그저 내 앞날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지 않으려는 모습들이 눈에 보였다.
사실 그렇게 큰 일은 아니었는데 그저 사소한 과제때문에 나는 또 짜증을 냈다.
"과제 해야된다고 정신사나워!"
엄마는 그럼 인하오기 전에 과제가 안끝나면 엄마가 인하데리고 할머니댁이라도 가겠다고 열심히 하라고..
엄마가 이젠 화도 안낸다.. 무조건 알았다고 열심히 하라고 한다..
다음 날 아침 인하가 왔다.
여전히 나는 과제를 끝내지 못해 사촌동생에게 얼굴 한번 안 비추고 방안에 틀어박혀 과제를 했고,
엄마는 방 밖에서 열심히 인하를 놀아주는 소리가 들렸다.
방안에서 조용히 그 소리를 듣고 있자하니 내가 어릴 때 엄마가 날 저렇게 놀아줬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야 엄마랑 싸우기도하는 어느정도 의사소통이 되는 나이지만,
저 나이 되지도 않는 말들로 이거해줘, 저거해줘라며 엄마를 귀찮게 했을 어린 시절..
그래도 엄마는 말도 안통하는 어린 애가 잘 자라길, 훌륭하게 자라길, 부디 나보다는 더 잘살길 바라며 그 희망하나로 즐겁게 지냈을텐데..
지금 나는 이렇게 머리가 컸는데도 나는 내 한치 앞도 모르는 앞날을 바라보며,
엄마에게 불안한 마음만 쏟아내기만 하는.. 바쁘다고 방문 꼭 닫고 내 일만 보고 있는 그런 딸이 돼있었다.
불투명한 내 불안한 미래가 싫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엄마아빠때문이다.
대부분의 초등학생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도 초등학교 땐 나름 대단한 학생이었다.
전교에서 상위권을 다투고, 어렵다는 자격증도 턱턱 따냈으며, 매학년 선생님들에게 칭찬만 받기 일쑤였다.
언젯적 얘기를 하나 싶기도 하겠지만, 그때 내 얘기만하면 웃음꽃이 피고 나 하나로도 충분히 행복거리가 되던 엄마아빠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점점 나이를 먹어갈 수록 그저 하루하루 대충대충 살아냈고,
엄마아빠는 앞날이 보이지않는 것에 집밖에서 고군분투하며 나를 키워왔다.
몇년 전만해도 왜 난 고층아파트에서 살지 못했는지, 비싼 레스토랑에 맘껏가지 못했는지, 사고싶은 옷을 맘껏 사지 못했는지 원망만 하기 바빴지만 나만 살아가기 바빴지만
이제 점점 내 마음이 힘들수록 엄마아빠가 떠오른다. 미안해진다.
고층아파트에 살지 못해도, 비싼거 못먹여도, 이쁜 옷 못입혀도 그래도 24살까지 열심히 키워왔는데
고작 나는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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