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하면 용감하다.
용감한 건 좋은 거다.
고로 무식한 건 좋은 거다.
3단 논법을 이런 데다 쓰게 되다니.
어릴 때 많이 해보라는 말이 단순히 기운이 넘쳐서 많이 해보라는 건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와서 생각해보니 어릴 때일수록 무식하기 때문에 많이 해보라는 것같다.
'무식(無識)', 아는 게 없다.
무식하니, 아는 게 없으니 용감하다.
예전에는 무식해서 그저 무슨 일을 시작할 때는 설레고 좋기만했다.
당장 내 눈앞의 설레고 좋은 일들만 보고 무작정 시작부터 했다.
하지만 하루하루 갈수록 듣는 것도 아는 것도 많아지니 무언가를 시작하면 무조건 계산부터 하게된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내가 이것을 해서 무엇을 얻을 수 있고 무엇을 잃을 것인가'
그러다보니 무서운 것, 두려운 것 투성이다.
세상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한 언니와 얘기하다가 '언니 이제는 뭘 하는 게 무서워요'라고 하니,
'이제 아는 게 너무 많아서 그래.'라고 했다.
사실 많은 나이도 아닌데 애늙은이처럼 속물처럼 얻을 것은 몇, 잃을 것은 몇인지부터 계산하는 게 싫다.
당장 앞의 것만 보고 재밌게 지내고만 싶은데, 나이답지 못하게 젊고 무식한 내 나이 하나 제대로 활용못하고 이러는 게 싫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를 때로 돌아가고만 싶다.
아닌가.. 내가 아직 애매하게 알아서 그런가.
더 많이 알면 지금 이 무서운 것, 두려운 걸 해결하는 방법도 알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냥 진짜 무식하게 순수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보고 지내고 싶다.
내가 할 수 없는 것들은 많이 알면서 내가 진심으로 무얼 좋아하는지는 하나도 모르는 내 자신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