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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응답하라 2017

첫출근을 앞두고...

첫출근을 앞두고 그동안의 마음가짐을 잊지않기 위해 쓰는 글.

그동안 지루하고 힘들었던 몇 년 간의 생활을 합격 연락을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금세 다 까먹어버렸다.

일을 시작하고 며칠이 지나면 나지막히 남아있는 이 감정들도 까먹을 것 같아 쓰는 일기.

그동안 내 자신이 존재 자체만으로 민폐같던 시간들이었다.

내가 소속이 없다는 게, 내가 밥벌이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게 이리 나를 주눅들게 만들다니.

내 감정은 둘째치고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내 자신이 그 사람들에게 폐가 된다는 사실이 더욱 힘들었다.

친구가 밥값을 계산할때마다 한발짝 소심하게 뒤로 물러나있는 내 모습.

나를 만나면 기쁜 얘기도 즐거운 얘기도 하지 못하고 힘내, 잘될거야라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

그리고 이런 나를 묵묵히 기다려주고 응원해준 사람들.

그 몇천원의 밥값 한 번이, 매번 지겨운 투정을 들어준 몇 분의 시간들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그 사람들때문에 하루하루 버틸 수 있었다.

그 계산대 뒤에서 한발짝 물러나 있는 시간 동안, 내 얘기만 쏟아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동안 얼마나 이 고마움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는지 모른다.

모든 고마움이 물질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지만,

내겐 지금 내 이름으로 벌어드린 돈 몇 푼으로 내가 그 고마운 사람들에게 밥을 한 번 사고, 커피 한 잔을 대접할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그동안 힘든 티를 얼마나 냈었는지 취업했다는 얘기를 하자마자 자기일인냥 축하해주던 사람들.

이제 한 시름 놓은듯이 웃는 엄마아빠의 얼굴.

꼭꼭 한 명 한 명 잊지 않고 갚아 나가야지.

첫 출근을 앞두고 카톡이 줄줄 왔다.

첫출근인데 떨리지 않냐며, 내일 출근이 맞냐며. 묻는 사람들.


'출근하냐'는 이 지극히도 사소하고 평범한 물음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단순히 '밥벌이'는 먹고살기 위함인줄 알았는데

문자를 하나하나 보다보니 이 밥벌이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6년 간의 내 곁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지켜주던 사람들을 위해서였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 너무 행복하다.

얼른 첫 월급 타는 날이 오기를.

월급날이라 돈이 많다며 거리낌없이 토익시험비를 빌려주던 이림언니, 시원한 카페 가서 자소서쓰라며 커피 기프티콘을 보내주던 귀슬언니, 임산부인 본인의 몸보다 면접복장에 불편한 구두신은 내 발을 걱정하며 모밀국수를 사주던 은혜, 자기가 보고싶어서 너를 데리고 온거라며 마음쓰지 않게 내 영화값을 내준 지선이, 취업하면 그때 몇배로 쏘라며 커피를 사주던 지은이, 첫월급도 안받아 돈도 없을거라며 용돈을 챙겨주던 친할머니, 대학입학 축하한다며 용돈과 함께 손수쓴 편지를 건네주던 작은아빠작은엄마, 춘천에 갈때마다 돈한푼 못쓰게 하던 빛나언니, 언니가 사주는건 그냥 고맙게만 먹으면 그만이라며 매번 밥값을 내주던 정은언니, 본인이 백수인 와중에도 나만보면 그렇게나 맛있는걸 사주던 천지언니, 생색도 한 번 안내고 묵묵하게 밥값을 계산하던 광운오빠, 뮤지컬 보기 전에 본인이 먹고싶다는 핑계로 커피를 사주던 샛별언니, 치킨먹고싶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던 현정언니, 밥도 모자라 교통카드도 거리낌없이 내주던 영은이, 김밥천국 온갖 음식을 다 사주던 동원오빠, 내 자소서를 밤낮으로 첨삭해주던 영은언니, 호주에서 와 돈도없을텐데 쭈꾸미쐈던 단비언니, 강릉에 가면 그렇게나 먼저 계산하던 영후오빠, 얼마 만나지 않는 그 몇번에 매번 밥을 사주던 의용오빠..... 외에도 너무 고마운 사람들이 많아 하나하나 다 적을 수가 없다.

언제 다 갚지. 그래도 이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진게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 내가 이 사람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처지(?)가 되었다는 게 너무나도 행복하다.


열심히 일하자, 그리고 힘든것도 행복한것도 모두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길. 첫출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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