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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응답하라 2015

터졌다.

몇개월동안 계속 응어리져있던 것들.

단순히 살면서 겪는 문제라기보다 뭔가 내 인생에 어떠한 방향을 정해버릴 것같아서 무서웠던 날들.

뭔가 되게 답답하고 우울한데 그래서 그냥 한 번 팡 터뜨려버리고 보내버리고 싶은데 명치에 쌓이고 쌓여서 터져버리지는 않았던..

오늘에서야 그게 팡 터져버렸다.

날 터져버리게 한 그건 바로 깨끗하게 정리된 집.

집에 돌아오니 엄마가 없었다.

엄마는 어딜갔는지 집안을 깨끗히 청소해 놓고 외출을 했다.

늘 그랬듯 나는 이불을 개어놓지 않고 책상을 어질러 놓고 나왔는데, 책상은 너무나 깔끔했고 이불은 정갈하게 접혀져 침대 옆에 놓여있었다.

안방 침대도 이불이 예쁘게 개어져 놓여있었다.

엄마는 왜그리도 집을 깨끗히 청소해놓고 이불 하나하나 예쁘게 개어놓는지 모르겠다.

그저 이 집엔 엄마와 나 둘뿐인데 그냥 살아도 될 거, 가지런히 정돈을 해놓는다.

그리고 내가 뭐가 이쁘다고 굳이 내방까지 그렇게 치워놓는다.

그렇게 가지런한 침대 위에 철푸덕 누워있으니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하루하루 내일은 좀 더 나은 하루가 될 것같아 저렇게 집안을 청소해 놓나보다.

엄마의 좀 더 나은 하루를 위해서는 내가 좀 더 나아져야만 할 것같았다.

아니 그래야한다.

나는 엄마의 희망인데 이렇게 의욕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게 엄마는 얼마나 속상했을까.

엄마한테는 자랑만 하고싶어서 초중고대학교 내내 잘한 것만 얘기했다.

좋은 것만 듣고있으니 엄마는 당연히 내가 너무나도 잘난 딸인 줄 아는데,

요 몇개월 사이 엄마 앞에서 대놓고 '힘들다'를 달고 사니 속상했을 엄마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늠된다.

나는 엄마의 자랑이고 싶다. 

우리 엄마는 이렇게 야윈 몸으로 어찌될지 모르는 내일을 위해 청소만 하고있지 않았으면 좋겠고,

모임에 나가서 떵떵거리며 우리딸은 이래라고 자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끔은 내가 사준 비싸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으면 좋겠고,

티비에 나오는 부잣집 아줌마들처럼 옷도 멋드러지게 입고 멋진 외출도 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그런 엄마의 하루하루에 보탬이 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차라리 나보고 얼른 취업하라고 돈 많이많이 벌라고 혼내켜줬으면 하는 생각도 한다.

그냥 너 하고싶은 일 하라고 돈 많이 못벌어도 된다고 사람은 의식주만 해결되면 된다고 말하니까 더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이렇게나 깨끗한 집을 보는데 갑자기 그동안 응어리졌던 것들이 터져버리면서 미안함이 북받쳐 빈집에서 엉엉소리내며 울었다.

그냥 혹시나 내 인생이 이렇게 잘못되어버리면 어떡하나하고. 답이 없어서 답답해서.

나는 잘돼서 엄마아빠한테 누구에게나 자랑스러운 딸이고싶은데 잘못되어버린건 아닐까해서.

정말 나는 내가 우리엄마아빠랑 함께 잘 정말 잘 살았으면 좋겠어서 펑펑 울어버렸다.

너무 울어서 아직도 머리가 아프다.

그동안 엄마아빠가 싫진않은데 내가 엄마아빠를 사랑하는 건지는 잘 몰랐다.

그런데 오늘에서야 알겠다. 난 엄마아빠를 정말 사랑한다. 난 우리엄마아빠가 없으면 안 될 것같다.

조금있으면 당연히 엄마가 올텐데 이 순간에도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싶다. 나는 우리 엄마아빠가 정말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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