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뷰

<걷기왕> (약간의 스포)

영화 속 주인공은 감독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관객들에게 어떤 이상적이고 좇아야할 존재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특히나 꿈을 이야기하는 영화면 더욱 그렇다.

우리가 봐왔던 대다수의 영화들은 주인공이 극적으로 꿈을 찾고, 극적으로 꿈까지 이루는 정말 영화같은 이야기의 집합체이다.

'걷기왕'도 늘 모든 영화들이 그랬듯, 주인공은 어떠한 특별한 계기로 꿈을 찾게되고 꿈을 위해 열정을 잊지않고 노력하고, 그 꿈을 끝끝내 이뤄내는 그런 영화라 모두들 예상할 것이다.

하지만 영화내내 영화는 정말 ‘자연스럽게’ 그와 정반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만복은 단순히 ‘뭔가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경보를 시작했다.

그리고 만복이에게 경보를 추천한 선생님은 영화 속에 스며드는 자연스러운 존재가 아닌, ‘부담스럽고, 과하고, 이질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오히려 보통 영화에서는 공무원을 준비하는 누군가가 굉장히 희한하고 꿈조차 없는 무능한 사람처럼 그려지는 것에 반해 이 영화 안에서는 공무원을 준비하는 지현은 자신의 꿈에 대해 확고한 논리를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그동안의 미디어 속에서 그려진 ‘청춘’이란 단어가 왜그리 청년들에게 불편하게 느껴졌는지 이 영화를 통해 찾을 수 있다. 대사의 말을 빌리자면 사람들은 왜그리 ‘힘을 내는 것은 힘든데 왜 굳이 힘을 내라고 하느냐’는 것이다. 그저 그렇게 시대에 맞춰 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인데 무작정 열정과 인내를 쏟으라는 말이 진리인냥 열변하는 것은 청춘들에게 와닿지 않는 것이다.

결말은 그런 이야기에 정점을 찍는다. 역경을 이겨내고 끝내 목표를 쟁취하는 것이 아닌 그냥 ‘포기’하는 것이 이 영화의 결말이다. 다시 맨 앞으로 돌아가 모든 영화 속 주인공은 관객들에게 이상적이고 좇아야할 존재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이 영화는 만복이 경보 경주를 포기함으로써 관객들에게 ‘그냥 포기해도 좋다.’고 말하고 있다.

사실 영화를 보는 내내 느끼겠지만 만복은 사실 경보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도, 목표를 이뤄야할 뚜렷한 이유도 없다. 그냥 어쩌다보니 경보를 하게 됐고, 어쩌다 보니 경기도 나가게 됐고, 어쩌다보니 넘어졌고, 어쩌다보니 포기하게됐다.

자기소개서 수백장을 쓰다보면 알겠지만은 제일 어려운 항목은 바로 ‘지원동기와 입사후 포부’이다. 물론 어떤 일을 하고픈 특별한 계기와 목표가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흘러가다보니 취업을 하게 될 나이가 됐고, 흘러가다보니 이게 그나마 잘 맞는 것 같아 지원했고, 붙여만 주면 들어가서 열심히할거고, 또 직장인으로서 흘러가다보면 특별한 계기로 성과를 내지않을까.란 생각일 뿐인데 '동기', '포부'라는 말이 부담스러운 것은 당연할 터. 

그렇게 평범한 우리들에게 특별한 무언가를 바랐던 것에 지쳐 이 영화가 더욱 특별해 보였으리라.

뛰는게 힘들어 굳이 뛰지않고 걷는 이들이여. 당신들이 이상한 것이 아니다.

뛰다가 힘들면 걸어가도 되고, 걷다가 힘들면 포기해도 된다.

뛰지말고 걸어라, 해내지 말고 포기해라. 세상의 모든 걷기왕들이여.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노트북>  (0) 2020.08.30
82년생 김지영  (0) 2018.01.25
<고등래퍼>  (0) 2017.04.01
<여름밤>, 그리고 <말하지않으면>  (2) 2016.12.14
춘희막이  (0) 2016.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