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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2

정규직이 안됐다.

그래서 다시 백수가 된지도 약 2주 가량 지났다.

남들은 퇴사하고 그동안 못다한 여유를 즐긴다지만, 사실 나는 일을 할 때가 더 행복했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일을 쉬고 있는 지금보다 일을 할 때가 더 심적으로 많이 여유로웠던 것 같다.

3개월 동안이나마 고마운 친구들에게 밥을 살 수 있었고, 그동안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아침 출근 지하철을 타며 어딘가로 향하는 그 무리들 속에 속해있었다는 게 얼마나 행복했는지,

잠시나마 주말의 아쉬움이 무언지도 알 듯했다.

정규직이 되지 않으면 많이 속상할 것 같아서 내내 마음을 다잡았다.

혹시나 정규직이 되지 않았다는 소식에 남들 앞에서 눈물이라도 나면 쪽팔리니까.

다행히도 하도 마음을 다잡아서인지 눈물은 나지 않았다.

나름 의연했고, 그러려니 했다.

정규직이 되지 않음을 알고 일을 하는 2주 동안 회사도 나름 웃으며 잘 다녔다.

그리고 마지막 날. 어딘가를 떠날때마다 그렇듯. 괜히 뭔가 두고온 느낌, 뭔가 해야할 것을 하지 않은 느낌들이 가득가득.

그런 느낌을 가득안고 회사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딱히 오랜시간을 보낸 것도 뭔가 깊은 마음을 나눈것도 아닌듯한데, 그냥 안녕히계세요라는 말을 입에서 내뱉는데 눈물이 울컥했다.

사실 눈물을 아끼는 편이 아니다. 누군가를 떠나보내든 내가 떠나가든 아쉬우면 남 신경않고 펑펑 울어버리는 편이지만, 왠지 마지막이라 싱숭생숭한데도 울기 싫었다.

그래도 나름 마지막이라고 이것저것 고마웠던 말들을 하고 나오려했는데, 더 말을 하면 눈물이 날 것같아서 그냥 정신없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 생각해보니, 마지막이라는 것보다 그냥 3개월 동안 마음졸이고 고생한 내 모습이 스쳐지나가서 눈물이 나오려했던 것 같다.

정규직이 되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참 많이 미웠다.

이 짧은 3개월이 나에겐 얼마나 큰 선택이었는지 이 사람들은 알긴알까. 직장 합격 소식을 들었을때 함께 기뻐해주던 그 수많은 사람들을 알까. 그 얼마동안 소속감없이 마음 졸였던 내 마음을 알긴알까.

사실 사회생활이란 게 이렇게 감정적으로 다가서면 안되는 건데, 자꾸 이런 내 마음과 상황을 알아주길 바라는 어린 마음만 자꾸 든다.

그래서 자꾸 밉고 속상하고 했는데, 마지막이라 그런지 그래도 고마웠던 것들이 자꾸 생각났다.

내가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랐던 것처럼 이 사람들도 나름대로 나를 배려해주려 노력했겠지.

나를 알아주길 바라는 것처럼 나도 이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것 알아내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생각을 하니 고마운 것들이 하나 둘씩...

그래서 눈물을 참느라 못다했던 말들을 장문의 라인으로 남겼다.

그 몇주간 치기로 마지막에 속상했던 내 말들을 내뱉어버릴까 아주 몇 초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라인을 남기고 나니 역시 속상했던 말을 남기는 것보다 좋고 고마웠던 말을 남기는 게 확실히 낫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라인의 답장으로 다들 짧든 길든 내게 라인을 남겨줬는데, 그래도 아직 속상한 맘이 커서인지 그들의 마음이 100% 흡수되진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지나고 그 글들을 다시 보면 그들의 마음도 다 이해되겠지...

그리고 퇴사기념으로 나름 파티를 한답시고 혼술을 했는데,

제일 마지막에 답장이 왔던 혜지님의 긴 장문 라인에 감정이 북받쳐 눈물이 나왔다.

회사 짤리고(?) 술먹으면서 이게 웬 주책인지...

그래도 어딜가나 남는 건 사람.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나서 참 좋다 그래도.

그냥 정규직 되지 않은 마음에 자꾸 속상한 것만 떠올리려 하지만 그래도 좋은 것들도 참 많았다.

첫 사회생활이라 그런건지 아님 이 회사가 정말 그런건지는 몰라도.

사람때문에 마음고생않고 좋은 사람들만 가득한 곳에서 일할 수 있어 행복했다.

일 힘든건 그렇다 치더라도 사람때문에 힘든건 참지 못한다는데 사람때문에 출근이 싫었던 적은 없다.

그리고 인턴이 끝났다고 이렇게 선물을 챙겨준 것도 고맙고...

이것저것 많이 서툴렀는데 뭐 하나 싫은 내색없이 기꺼이 가르쳐주던 팀원들...

오며가며 회사는 괜찮은지 물어보던 사람들...

고마웠다.

마지막 출근길에 신도림역에서 매번 보던 시각장애인을 보았다.

분명 첫 출근때만해도 어머니가 함께 와서 도움을 주셨는데, 이젠 어머니 없이 혼자 지하철을 타신다.

참 쉽지 않은 일인데 저 분은 3개월동안 저렇게나 많이 노력하고 배우고 이뤄내셨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는 똑같은 그 시간동안 무언가 이뤄냈을까, 발전했을까 생각해보게 됐다.

마지막날이라 그런지 매일 아침마다 밝은 목소리로 요구르트를 배달해주시던 요구르트 아주머니.

휴게실 하나 없어 화장실 한칸을 휴게실삼아 쉬시던, 폐지할머니까지 손수 챙기시던 맘따뜻한 4층 청소부 아주머니.

구디 3번출구에서 늘 밝은 얼굴로 빅이슈를 파시던 빅이슈 판매원분.

3개월동안 오며가며 눈에 익으며 정이 들었는데... 나혼자만 쌓아온 정같아서 마지막 인사도 주책같아서

요구르트 아주머니께는 3개월만에 처음으로 치즈를 구매하고,

빅이슈는 만 원어치나 구매를 하고 돌아섰다.

다들 잘 지내시겠지.

마지막 퇴근을 하고 나서는데 회사단체방에는 늘 그렇듯 즐거운 사진들이 오고갔다.

나 없어도 역시 세상은 잘 돌아가는구나 싶었다.

아쉬움에 이곳저곳 친구들에게 연락하는데 역시나 큰 힘이 되어주는 친구들.

이렇게 고마움은 자꾸 쌓여가는데 이 고마움은 언제쯤 다시 돌려줄 수 있을까.

이렇게 슬픈 마음 우울한 마음만 갖지말고 당분간은 힘내서 빠샤해서 내 꿈도 이루고 사람들 고마움도 갚아나가야지. 빠샤빠샤. 다음 직장을 위해!